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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rs Electronica

1. Communication is a process.

2. Communication is a process for creating understanding. I think understanding is a key word here. To understand, we need to know the past and present. To know the past and present, we need to get involved and talk. Therefore, communication is not just talking, but getting involved and being in a process of knowing each other. Process denotes that it will require some time to know each other and understand, meaning that being in a communicative relationship, we need a long time to ensure understanding.

3. Since we learned that communication is a process, we don’t expect instantaneous result. When we get a chance to talk with non-believers, we shouldn’t try to get immediate result. When the relationship with non-believers becomes ripe through a process, and we are ready for harvest, we will explain about Jesus, the Son of God, deeply. Understanding their standings in their ground is an important step in the process. We have to understand others in their home field instead of forcing them to come to our home turf. In order to communicate with them, I think we need to challenge them to express their own beliefs in their own way- because we don’t want to overlook their past experiences. Since one-time impact on non-believers is not a process of true communication, we want to cause them to understand themselves and their stance on religion correctly and then we can talk about Jesus in their context. Like Jesus has experienced, leading to the harvest is a long process, and as followers of Jesus Christ, we need to share our message “into the lifelong chain of communication” with them.

4. Jesus’ parables and his metaphoric languages: All parables told by Jesus in the New Testament make us think that Jesus’ way of communication is a continuing process. Jesus doesn’t simply give a simple answer. He makes his people think over their own questions. That’s why he often used metaphoric languages. To understand him, people needed a thinking process. That’s a process of communication. Giving a definite answer is not answering questions, but letting questioners discover the answers is the true answer. That’s a process. [BK Park]

1. 소통은 과정입니다.

2.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여기서 이해라는 단어가 핵심어입니다. 이해하기위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직시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알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 관여해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소통은 따라서 그저 말하는 게 아니라 연관짓는 것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정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통이 되는 관계에 이르기위해, 이해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연관’이 필요로 합니다.

3. 소통은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는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신자 또는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 때 즉각적인 결과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비신자 또는 타종교인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열매를 얻을 상황에 이르게 되고 그때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있게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 홈필드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홈필드에서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신앙을 그들 나름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과거 경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의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기에 그들 자신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입장을 정확히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경험으로 보여주셨듯 열매를 얻는 것은 긴 과정을 필요로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인생을 길게 보고 우리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4.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소통은 과정임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간단하게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유적인 언어를 구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소통의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질문에 올바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과정입니다. [박병기]

[질문] 예수님이 소통하는 방식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다. 우리는 왜 소통이 과정이라는 사실이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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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jaewon
hajaewon
4 years ago

우리의 소통과 예수님의 소통은 틀린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소통을 한다고하지만 많은 경우 결과에 집착하고 가장 빠른 시간안에 소통이되어서 결과물을 만들기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연관짓고 긴시간 인내하셨습니다. 비유를 통해서도 바로 답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깊은 생각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과정이고 소통하는 사람이 스스로 진실된 답을 찾을수 있게 도와주는것입니다. 소통이 과정이란 생각이 없으면 바로 결과물을 원하는 소통아닌 소통이 되기때문입니다.

enochcho
enochcho
4 years ago

예수님이 소통하는 방식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시 질문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의 과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곧바로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소통의 특징 중하나는 비유를 소통에 많이 이용하신다는 것 입니다. 소통이 과정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질문에 올바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chanytwins
chanytwins
4 years ago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야 하고, 과거와 현재를 알려면 서로에 관여해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저 말하는 게 아니라, 연관짓고 서로 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보기 위해서 봄,여름, 가을을 지나야하듯 소통에는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급합니다. 결과를 바로 보기 원합니다. 그러나, 상대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게 되고, 관계가 돈독해지려면 인내해야겠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말을 경청해주고, 그의 상황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적절한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되고 그제서야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소통이 과정임을 아신 것 같습니다. 늘 직접적인 답변을 주시는 대신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청자들로 하여금 다시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셨습니다. 제 소통방식은 늘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나의 의견을 제시하는 독단적인 모습이였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무례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생각은 물론 늘 진리입니다. 강요하셔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으시고 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우리로 다시 생각해보고, 진리를 발견하는데 이르도록 겸손하게 도와주셨던 것 같습니다. 오래참으시는 사랑과 배려의 하나님을 다시 발견합니다.

jeongsoo
jeongsoo
4 years ago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과짓고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빠르고 한 번에 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려 주셨습니다. 조건없이… 그리고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 주십니다. 오래 참아 주십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 과정에 저희들이 혼자가 아님을… 우리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또한 알게 하십니다.
누군가와 함께 공동의 관심사를 이야기 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늘 함께 하시며 오래 참아주신 것 처럼… 우리들도 상대를 알려는 노력을 하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한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yrsmmom
yrsmmom
4 years ago

답> 소통이 ‘과정’이라는 것이 특별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상황에서는 기독교인들과의 만남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한 마음 참여’, ‘연관짓기’는 어느 정도 전제된 것이 사실입니다.
요사이 비기독교인과 함께 자리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 사람이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불교 사상이 강한 그였지만, 기독교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함께 성경 공부를 하며, 유일신 하나님과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사실로 알게된 그에게 하나님을 영접하게 설득하고픈 생각이 많았습니다. ‘진리를 빨리 소개하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과 ‘그 분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는 방관자같은 무책임감이 교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냥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종교다원주의 입장같은 어색함도 있었습니다.
오늘 소통은 과정이라는 설명 내용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소통 방법은 나와 사뭇다름을 인정합니다.

sky3838
sky3838
4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은 은유적인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형성하면서 하시는 것에 비해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원하는 결과를 소통에서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jemmaoh
jemmaoh
4 years ago

소통에는 시간과 인내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함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급하게 그 결과로 다가가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심에 상대가 있기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더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의 입장과 생각을 관철시키기보다는 예수님의 소통의 방법은 나의 것을 내려놓는 희생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sjkhanmi
sjkhanmi
4 years ago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질문에 올바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급한 성격때문이라 시원한 답을 주려고 하고 또 시원한 답을 기대하지 상대로 하여금 생각하고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간 과정에 몹시 약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인내하고 기다려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kimyuin1
kimyuin1
4 years ago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 걸리는 과정임을 배웁니다.
소통이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다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시작은 좋은 의도였을지 몰라도 과정에서 혼란스런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kks21495
kks21495
4 years ago

자주 우리의 소통은 예수님의 소통과 다릅니다. 소통을 통해서 결론을 추론하려하고 또는 일방적으로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려합니다. 진정한 소통의 참 결과는 단지 소통의 대상을 더욱 성경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멘토로서 닮기 원합니다.

jinyoungusa
jinyoungusa
4 years ago

소통은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한 결론을 상대에게 주입시키고 이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방법을 써야하겠습니다.

juheejoy
juheejoy
4 years ago

저도 소통이 과정이라는….새로운 방식을 깨닫습니다. 지혜의 예수님처럼
소통의 과정을 거처,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은 질문에 올바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hklee
hklee
4 years ago

이 글을 읽으며 소통은 나눔이라기 보다 배려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알아가기 위해 대화를 하는 긴 과정이 필요한데 한국 사람의 국민성은 온 세계가 다 아는 “빨리빨리”이고 저도 그 테두리를 아주 벗어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할때 상대방의 입장이 아니라 내 홈휠드에서 이해할때가 많았었음을 인정합니다. 지금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즉 예수님처럼 질문한 사람이 자기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소통이 바로 과정이라는 것에 공감하고 이렇게 훈련되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chongiehong
chongiehong
4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 방식과 우리 방식은 많이 다릅니다.언제나 옮으신 주님의 방식을 제대로 배우기 원합니다.
소통은 먼저 연관을 짖는 것이라 배웠고 오늘은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임을 배웁니다.거리에서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 나를 툭치고 한마디 사과 없이 지나간다 해도 내 쪽에서 무례한 상대방의 입장을 나름으로 좋은 방향 즉 상대방의 홈 필드에서 이해하려고 해야 오해에서 이해로 전환 될 수가 있습니다.소통의 대상이 내 가족 ,시댁 식구 ,직장 동료 ,셀 식구,제일 중요한 섬겨야 할 멘티와의 관계이면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을 거쳐 ,상대방의 별난 행동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해의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내 중심으로 내가 들은 대로 내가 아는 만큼 내 수준에서 해석을 하고 반응을 하여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주위에서 많이 보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오해가 무서운 단절의 원인이고 ,과거와 현재의 알기 위해 관여한 긴 대화의 과정이 있어야 소통 속에서 화합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멘토이신 예수님의 소통 방법을 제대로 배우고 활용하여 질문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활을 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ysy2323
ysy2323
4 years ago

소통하고 이해하려 할때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생각.. 사상이 맞지 않은 사람과 는 소통하기 쉽지않은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이해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간..노력..애씀 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친한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눈빛만 봐도 알수있습니다. 설령 오해의 소지가 있어도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그럴수도 있지.. 그럴사람이 아니야.. 등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전혀 관심없는 사람,아니 싫은 사람과의 소통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가져가야할 숙제는 두번째 소통입니다. 미리 결론짓지 마고 포기하지말고 나같은 미련한 사람을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소통과 같은 인내와 기다림과 이해의 과정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justinchoi2005
justinchoi2005
4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의 방법은 저희/그리고 우리의 방법과 다른 면들이 많았습니다.
은유의 방법
그들이 스스로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방법 등등…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러기가 쉽지많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려줄 시간이 많지도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 포기하고
move forward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입이 하나도 귀가 두개인것처럼 더 듣고 생각해줘야하는데 쉬운일만은 아닙니다.

노력이더 필요할것같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고 이끌어주시는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면
우리의 기다림 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한 생각이 듭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뿐이고요.
그들의 눈높이에서 더 기다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nanjoo
nanjoo
4 years ago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는데,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기식이 아니라 던져진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절차가 제대로된 소통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은유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던지신 질문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과정을 원하신 것 같습니다. 그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깨닫게 하기 위해서….

jamieoh
jamieoh
4 years ago

며칠전 딸아이와의 대화중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바빳던 저는 자세히 설명하거나 기다리지 않고 저의 말은 딸아이의 말을 가로막으며 껑충껑충 뛰어 딸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딸아이는 황당해 했고 저는 빨리 나가야 했기에 급해서 말도,표현도, 행동도 딱딱하고 거칠었습니다. 바깥일을 다보고 저녁이 되어 혼자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저의 행동이 좀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많이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고 함께 갈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하는것이 저의 소통방식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핵심을 놓지지 않으면서도 생각하도록 은유적인 언어로 표현하시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소통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줄고 소통이 더 잘 될것같습니다. 소통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임을 기억하겠습니다.

mypsalm28
mypsalm28
4 years ago

소통은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삶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과거,현재, 미래를 같이 공유할 때 진정한 이해가 일어 나리라고 생각 합니다. 이해라는 시간적인 공간이 없이 원하는 답을 제시 하거나 끌어 내려 하는 모습들이 있지 않았나 살펴 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은유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말할때까지 기다리시며 예수님을 이해하도록 기다리셨으나,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하지 못할땐 다시 풀으셔서 말씀하시며 사람들과 소통을 하셨던 예수님. 예수님께선 말씀하신것에 대한 답보다 그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 하셨다고 생각 됩니다. 관계에 의해 서로를 이해해가며진실한 소통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다시 깨 닫습니다

bjkoh0423
bjkoh0423
4 years ago

소통하는 관계에 이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말은 우리의 인내와 노력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나의 홈필드에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홈필드에서 이해해야 함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지껏 내 입장, 내 생각, 내 경험이 우선되었던 나의 익숙한 소통의 습관을 버려야 함을 깨닫습니다. 당장의 섣부른 결과가 아니라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긴 과정이 필요하고, 상대방이 진실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야 하는 과정까지도 소통임을 배웁니다.

jennymaeari
jennymaeari
4 years ago

저는 성격이 좀 급한편입니다.
인내심도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에게 내가 묻고 내가 답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급한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나의 답을 주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배려하며
상대방이 생각하게 하여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알아가며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소통 방법입니다
다 알고 계시지만 예수님 필드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드에서 이해하시는,연약한 우리를
끌어안으시는 진정한 소통을 하신분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아셨기때문에 오늘도 우리를
체휼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언제나
주님과의 소통에 자리로 나아가기를 힘씁니다.

jamiemsl
jamiemsl
4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은 이해, 관심, 배려, 그리고 인내의 과정이지만 우리의 소통은 과정이라기 보다 서로에 대한 대화에 그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바로 답을 알기 원하고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기 귀찮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통에는 과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으셨기 때문에 바로 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은유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더 많이 더 오래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배려와 인내가 부족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바로 알아주길 바라고 안 알아주면 답답해 하고 더 나아가 오해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해하고 깨닫을 때 까지 다그치지 않으셨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소통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이심을 배웁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소통의 깊은 과정가운데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sunnyhapark
sunnyhapark
3 years ago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소통이 과정임을 보여주셨고, 사람들에게 각자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하셨기에 은유적인 언어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얻어지는 시원한 답은 질문에 올바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사람이 각자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여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것이 바른 소통의 과정임을 보여주십니다.
멘토로써 질문을 던진 사람이 각자 자기의 질문을 생각하며 답을 발견하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멘토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hklee
hklee
Reply to  sunnyhapark
3 years ago

네… 인내로 기다려주는 멘토가 소통의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런 멘토가 되시길…

sarahkim0905
sarahkim0905
3 years ago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바쁜 삶 속에서 소통에 있어서도 빨리 급하게 결과를 얻으려 하고. 따라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 의하면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시간이 걸리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통의 핵심은 이해로서 나의 입장에서의 이해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통해 소통은 과정임을 보여 주십니다. 간단하게 답을 주시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과정을 겪게 하셨습니다. 소통에는 사랑과 인내를 수반하는 시간이 필요한 ‘과정’임을 명심하겠습니다.

sjkhanmi
sjkhanmi
Reply to  sarahkim0905
3 years ago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며,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건전한 소통이 권사님의 삶 가운데 풍성해지길 기도합니다.

samsoonkim3
samsoonkim3
3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 방법과 나의 소통 방법은 너무 다릅니다. 예수님은 간단하게 답을 주시기 보다는 비유릏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저는 설명하고 설득하는것 보다 요점만 간단히 전달하는 것을 좋아 하는 편입니다.소통은 알아가는 과정,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과거 현재를 직시하고 서로 관여해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이해에 도달 하기위해 나의 필드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면서 당장 시원한 답을 기대하고 주기 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인내하며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수 있는자가 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hklee
hklee
Reply to  samsoonkim3
3 years ago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멘티를 위한 배려입니다. 권사님, 우리 그런 멘토가 되어갑시다.

hschung
hschung
3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방식과 우리의 소통방식은 다른것 같습니다.예수님의 비유적방식.질문을 다시 되묻는 방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한층더 엎그레이더 하십니다.소통은 과정처럼 기다리면서 이루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kimyuin1
kimyuin1
Reply to  hschung
3 years ago

“에수님의 비유적방식..질문을 다시 되묻는 방식”…질문을 이해하기위해 다시 되물으며 진실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네요

yoonyoungeun
yoonyoungeun
3 years ago

소통은 과정이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소통의 결과를 보고 빠른 시간안에 평가 하려는 저의 자세가 많은 경우 잘못되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연결 고리 안에서
서로의 입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하고
결과를 뛰어넘어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며
자발적 동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저에게 필요합니다

bettyoneway
bettyoneway
3 years ago

예수님의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비유를 통해 말하시며
바로 답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깊은 생각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소통하는 사람이 스스로 진실된 답을 찾을수 있게 도와주는것이며 배려인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소통은 정해진 답과 결과를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했던 결과를 얻어야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소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인내,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예수님의 소통이며, 그런 소통의 훈련이 제게는
좀더 필요하고, 닮기를 기도합니다.

samsoonkim3
samsoonkim3
Reply to  bettyoneway
3 years ago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인내, 진정한 관심과 사랑의 소통을 하셨던 예수님을 우리함께 닮아가기를 기도 합니다.

imsunhee
imsunhee
3 years ago

오랜동안 소통의 정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네요 MP 훈련덕분에 당장 시원한 답을 주시지 않은 덕분에 답을 얻으려고 몸부림 친 덕분에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복음에 대해 생고구마인 동료에게 복음을 들고 다가 가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몇년동안 복음은 시작도 못하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뜨거운 감자 다루듯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며 이해하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0년 만에 그 친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samsoonkim3
samsoonkim3
Reply to  imsunhee
3 years ago

아멘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며 유지한 관계가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be101
be101
2 years ago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전 9:20-23)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아니하다고, 우리의 기준에 부합하지 아니하다고 편을 가르며 편협하게 생각하고 소통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시켜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귐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단 하나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기에, 오직 이 땅의 신은 여호와 하나님임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은 편협적이라고 말하며 좋지 않게 봅니다. 하지만, 이 진리 안에서 주께서 원하시는 소통을 해야함을 깨닫습니다. 진리 안에서 그들을 이해하며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야함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불통된 상태로는 말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들과 소통한다고 하여 우리가 진리를 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소통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기회를 주실 때에 과정과정을 주 앞에 아뢰며 지혜를 구하며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jaeyeonenoch
jaeyeonenoch
2 years ago

우리의 소통 방식은 같은 결과를 찾아 내는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저 결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적 인 질문을 통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에게서 답을 찾게 하셨습니다.
좀 더 인내와 배려 함으로 상대 방에게 다가 가도록 노력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jaeyeonenoch
jaeyeonenoch
2 years ago

우리의 소통 방식은 같은 결과를 찾아 내는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저 결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적 인 질문을 통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에게서 답을 찾게 하셨습니다.
좀 더 인내와 배려 함으로 상대 방에게 다가 가도록 노력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Lina Hwang
Lina Hwang
2 months ago

예수님과 우리의 소통 방식은 다릅니다. 우리는 소통이 결과를 얻기 위한 단순한 방법이라고 쉽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하부르타라는 긴 과정을 통해서 소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이 소통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시원한 답을 바로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를 배우는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humblesticker
humblesticker
2 months ago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많은 인내가 필요하것 같습니다. 지금 직장동료와 소통을 하려고 많이 노력중인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것 같습니다. 미래저널을 가지고 그사람이 어떤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게 그래도 그중에 가장 성공적이었던것 같습니다. 나의 home court advantage 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듣는것이 첫단추인것 같습니다.

hyun
hyun
2 months ago

예수님의 소통방식과 저의 소통방식은 참 다릅니다. 저는 은연중에 “빨리빨리”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든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즉각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고 싶은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소통은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장 시원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진실된 질문은 진실된 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qua
aqua
1 month ago

예수님이 소통하는 방식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목표가 다르기에 방식도 따라 다름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소통하는 방식의 목표는 이해에 이르기 위해 관여 하고 연관 하며 알아 가는 동행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생각하며 성장을 이뤄 가는 상대에게 의미를 둔 소통입니다. 우리가 하는 소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전달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고자 하는 소통이 아닌 통보가 목적 이기에 기다리는 자체를 허용할수 없게 된것 같습니다. 소통이 과정이라는 생각이 있어야만 진실된 답을 발견하고 열매를 맺을수 있을 때까지 포기 않고 긴 시간 동안 연관할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